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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등록일

2012-11-09

등록자

SEE삼성안과

수능을 본 수험생들에게 들려주는 글
시골의 문학소년에서 도시의 안과전문의가 되기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SEE삼성안과 대표원장, 안과전문의 김병진입니다.
이번에도 수능시험을 준비하고 보느라 애쓰신 수험생 여러분, 그리고 뒷받침 하느라 애쓰신 수험생 부모님들과 가족 여러분, 그 동안 정말 애쓰셨습니다.
 
이제 힘든 수능시험은 끝났지만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고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인생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더 중요한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혹시 의과대학을 거쳐 의사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수험생들이 있으면 참고가 될 까 하여 제 기억을 되짚으며 이 글을 써 봅니다. 각자의 입장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 제 글은 참고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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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제일의 국립대학 화공과를 나오시고 60-70년대에 우리나라 산업역군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석유-가공 공장을 짓고 공장장으로 열심히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울산, 여수 등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자라난 곳은 정이 많고 한가로운 우리의 옛 시골 그대로였고, 저는 방과후 매일 어두워 질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자연을 벗삼아 야외에서 뛰어 놀며 술래잡기, 팽이치기, 개구리잡기, 뱀 잡아 돌리기, 개미집 연구 등을 하며 지냈고 각종 식물과 곤충들은 저의 관찰대상이자 친구들이었습니다. 4계절마다 갖은 색으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푸른 하늘은 제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높고 깊게 키워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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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이나 시원한 가을날이면 혼자 풀밭에 몇 시간이고 누워서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공상의 나래와 시적 감상을 마음껏 펼쳤고,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저는 여수시에서 개최한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축제인 ‘진남제’ 등에서 시를 써서 상을 여러 번 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한가롭게 지내던 시골 문학소년은 자식을 서울에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한 교육열에 힘입어 초등학교 6학년때 그 당시 강남 8학군보다 더 교육열이 치열했던 서울의 여의도 초등학교로 전학 오게 됩니다. 물론 공장장을 근무하시느라 가족들과 같이 올라오시기 힘드셨던 아버지는 공장 현지에 기러기로 남게 됩니다. 요즘에 외국유학을 떠난 자식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남은 기러기 아버지들처럼 말이죠.
 
한가롭게 지내던 시골 문학소년에게 서울의 치열한 교육 1번지는 충격과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말고 행동이 시골스럽다고 친구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고 지금처럼은 아니지만 따돌림도 좀 당했습니다. 지방의 학교에서 천재소년이던 제가 서울의 교육 1번지에서는 성적도 밑바닥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생전 처음으로 방과 후에 과외라는 것을 시작했고, 그것 또한 저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끼워주지도 않고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로 말수도 줄고 서울말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말을 좀 더듬게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감수성과자신감을 상실하고 외롭고 소심하게 지내던 제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운동회였습니다. 저는 시골에서부터 운동회 때마다 반 대항으로 하는 릴레이달리기 시합의 단골선수였습니다.
 
거기다가 시골에서 수년간 매일 산과 들을 달리면서 단련한 다리는 도시의 아이들과 비교도 안되게 깅하게 단련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반의 릴레이 달리기 최종주자로 나선 저는 시골에서 올라온 건강한 경주마처럼 엄청나게 질주하였고, 그 결과 저에게 돌아온 것은 반대항 달리기 1등의 영광과 함께 반친구들의 열렬한 환호였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100M를 14초 9에 주파했으니 꽤 빨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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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저는 반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자신감도 회복하며 방과 후 과외와 서울 생활에 서서히 적응해 나갔습니다. 물론 성적도 상위권으로 올라가게 되었죠. 릴레이 달리기 시합 후 유일하게 힘들었던 점은 저를 유심히 눈여겨보았던 체육선생님의 반강제 권유로 인해 육상부에 가입하여 정기적으로 힘든 육상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저는 서울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성적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육상부 생활도 함께 병행하며 매일 방과후 8Km 이상씩을 훈련하면서 제 다리는 더 단단하고 두꺼워지고 못생겨졌습니다.
 
중 3때에는 기록이 더 좋아져서 100M를 12초에 주파하였는데, 당시 전국체육대회 출전권이 달린 효창운동장의 서울시 단거리 예선전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대회에 처음 나간 저는 스타팅 블록에서 엄청 떨었고, 11초 기록이 즐비한 선수들 틈에서 당연히 탈락하였습니다.
 
그 대회 이후 저는 육상에 대한 제 한계를 절감하고 더욱 더 공부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학교때에도 문학과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아서 책도 많이 일고 틈틈이 시도 써보곤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그 당시 전국에서 일반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체력장테스트에서 거의 만점을 받아서 ‘88올림픽 체육꿈나무’로 선정되어 체고 전학을 권유 받았으나, 고수들의 세계에서 이미 제 한계를 느껴본 저는 인문계고에 남아서 공부의 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중학교때에 최상위권이던 제 성적은 고등학교 1학년때에 찾아온 뒤늦은 사춘기와 술마시기와 당구장 출입, 친구들과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기 등으로 많이 떨어졌고 부모님께 반항하며 무던히도 속을 썩였습니다 (제가 요즘 고등학생 아들의 학부형이 되고 보니 부모님께 더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 당시에는 고 1에서 고 2로 올라가면서 문과와 이과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저는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은 문과를 가고 싶었으나. 저를 아끼고 걱정해주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엄히 꾸짖으시며 놀던 다른 친구들과 같이 문과반으로 가면 인생을 망친다며 반강제로 이과로 결정해주셨습니다.
 
고 1때 같이 신나게 놀던 친구들과 분리된 후, 고 2때부터 철이 들기 시작하여 다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그래도 아직 제가 미덥지 않고 저의 미래를 걱정하시던 부모님께서 고 2 여름방학에 정신 좀 차리라고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산속의 청소년수련원에 2달간 격리시키셨습니다. 
 
거기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며 부모님의 고마움도 알았고 재수 공부하거나 고시 공부하는 형들과 지내면서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보답 받는 세상의 무선운 이치와 공부의 중요성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련원에서 하산(?)후에는 저는 180도 달라져 있었고, 당시에도 저희 학교는 두발 자유화가 되어 머리를 기를 수 있었으나 정신을 다잡기 위하여 수도하는 자세로 머리를 짧게 밀고 고3때까지 잠을 줄여가면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공부하여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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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진학 후에도 교훈을 잊지 않고 치열하게 공부하여 차석졸업 후, 내과적인 의학지식과 외과적인 꼼꼼한 술기를 모두 요하는 종합의술인 안과를 전공하게 되었고, 안과전문의 과정과 대학교수 및 외국 교환교수 연수를 거친 후, 좀더 이웃에게 가까이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하여 현재의 SEE삼성안과를 열고 대표원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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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골출신 문학소년이었고, 무식하게 운동하는 육상부였으며, 방황하는 불량 청소년기도 거쳤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옆길로 가는 긴 여정을 거치는 동안, 항상 바른길을 제시하시며 저를 도와주신 현명하신 부모님과 신의 도움으로 지금의 의사라는 길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문학과 이과적인 지식을 동시에 요하면서,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제 적성에도 잘 맞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현재 미래와 진로를 고민하는 수험생 여러분, 오늘 시험성적이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마세요. 미래의 돈이나 성공을 쫓기보다는 자신의 적성에 잘 맞고 행복할 수 있는 진로와 미래를 선택하십시오.
 
사랑하는 부모님과 자신을 믿고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꿋꿋이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성공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위치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해질권리가있는
대한민국의 모든수험생여러분들과여러분들의꿈을저와SEE삼성안과 가족 모두가 함께 응원합니다. 화이팅~!
 
-SEE삼성안과 대표원장 김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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